노크리듬 이론
한가지 가상적인 사례가 반증가능성 기준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줄 수 있다. 한 학생이 내 연구실 문을 노크한다. 내 연구실에 같이 있는 동료 교수는 각기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노크 할 때 사용하는 리듬에 관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 내가 문을 열기 전에 그 동료교수는 노크한 사람이 여학생이라고 예언한다. 문을 열고 보니 정말로 여학생이다. 나중에 나는 그에게 인상적이라고 말을 하겠지만, " 노크리듬 이론" 이 없이도 우연히 맞힐 가능성이 50%나 되기 때문에 그렇게 정색을 하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에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더 많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 가능성이 더 높다. 그는 더 정확하게 예언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시 노크 소리가 들린다. 그는 22세가 안된 남자라고 예언한다. 문을 열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남학생을 발견한다. 우리 학교에는 22세가 넘은 학생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의 예언이 상당히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학교에는 젊은 남학생들이 상당히 많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나의 인정을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는 마지막 검증을 제안한다. 다음번의 노크 소리에 뒤이어 그는 " 여자이고, 나이는 30세, 키는 160cm, 왼손에 책과 지갑을 들고 있고, 오른손으로 노크를 하였다" 고 선언한다. 문을 열고 그 예언을 완벽하게 확증한 후에 나의 반응은 이제 완전히 달라진다. 동료가 속임수를 써서, 그 사람들이 순서대로 연구실에 나타나도록 사전에 배치하지 않았다는 전제 아래, 나는 이제 완전히 인정한다.
결국 좋은 이론이란 자신을 반증가능성에 노출시키는 예언을 하는 것이다. 나쁜 이론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위험한 궁지에 빠드리지 않는다. 나쁜 이론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으 위험한 궁지에 빠뜨리지 않는다.
프로이트와 반증가능성
20세기 초엽 칼 포퍼는 어떤 과학이론들은 새로운 진보와 지식으로 이끌어 가는데 다른 이론들은 지적 정체현상으로 이끌어가는 것으로 보이게 되는 기저 원인을 탐색하였다. 예컨대, 전자의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관찰로 이어졌는데, 놀라운 까닭은 많은 가능한 사건들이 그 이론의 예언과 상치되어 이론을 반증할 수 있도록 예언이 구조화 되었기 때문이다. 포퍼는 정체된 이론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추론하고는, 한 예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지목하였다. 프로이트 이론은 사건이 일어난 후에 인간 행동을 설명하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개념 구조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사전에 그 사건을 예언하지는 못한다. 이 이론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포퍼는 바로 그러한 특성이 이론을 과학적으로 공허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론이 아무런 특정한 예언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프로이트 이론의 지지자들은 이 이론이 개인의 사소한 행동에서부터 대규모의 사회현상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인간사를 설명할 수 있도록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경주했지만, 이론을 사후약방문식 설명의 풍부한 원천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 바로 이 이론으로부터 과학적 유용성을 박탈해버린 것이다. 오늘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은 현대 심리학 이론으로서의 역할보다는 문학적 상상력에 관한 촉매제로 보다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심리학 내에서 이 이론이 그토록 쇠퇴하게 된 이유는 부분적으로 반증가능성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 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증이 불가능한 이론의 존재는 실제적인 해악을 발발한다. 예컨대, 자폐증의 원인에 관한 설명은 정신분석학적 설명으로 인해서 막다른 골목에 갇혔다. 투렛 증후군의 역사를 살펴보자. 이 증후군은 특징적으로 돼지처럼 꿀꿀거리거나 개처럼 집어대는 발성증상, 말 반복증 그리고 외설 반복증 뿐만 아니라 안면 경련과 신체의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근육 경련을 일으키는 질명이다. 투렛 증후군은 중추신경계의 기질성 질환이며, 오늘날에는 약물치료를 통해서 치료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 투렛 증후군 환자들은 박해를 받았다. 중세기에는 종교집단들이 마귀로 간주하였으며, 상당히 최근까지도 푸닥거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이 질병의 원인과 치료에 관한 이해가 1921~1955년 까지 상당히 지체되고 말았는데, 이 시기에는 투렛 증후군에 관한 설명과 치료를 정신분석학적 개념화가 주도하였던 것이다. 수많은 학자들이 이 증후군에 대한 반증 불가능한 정신분석학적 설명을 제안하였다. 그 결과로 모호하기 짝이 없는 설명들이 과다하게 되어 이 증후군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개념적 복잡성을 초래하였으며, 정확한 이해를 향한 과학적 진보를 차단하고 말았다. 발달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은 " 프로이트의 사도로서 투렛 증후군 환자를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산도를 피렌찌가 어떻게 투렛 증후군 환자의 빈번한 안면경련이 수음 욕구가 억압된 결과라고 기술하면서 위에서 기술한 정신분석학자들과 똑같이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는지" 를 보여주고 있다.
투렛 증후군의 치료와 이해에서의 진보는 연구자들이 정신 분석학적 설명이 공허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함으로써 비로서 시작되었다. 정신분석학적 설명은 마치 사건들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유혹적이었다.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 후라면 모든것을 설명해냈다. 그러나 이들이 제공한 설명은 실제에 있어서는 이해하였다는 착각만 생기게 했다. 사건이 일어난 후에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시도함으로써 그 이상의 진보를 향한 문을 닫아 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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